과학 기술—그것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

2024. 1. 21. 23:20과학, 지구, 동물, 식물, 자연, 환경,우주, 생물, 바다, 하늘

여러분은 과학하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헤 줄 수 있습니까? 

 

포올 듀카스의 음악과 월트 디즈니의 영화 「환타지아」로 인기를 끌었던 괴테의 동화 「마법사의 견습공」(The Sorcerer’s Apprentice)에서, 견습공은 자기 주인의 신비한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 일을 좀 덜어 보고자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빗자루를 시켜 물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 견습공은 빗자루를 제어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 순종적이지만 분별력없는 노예는 집안에 너무 많은 물을 끌어들여와 홍수가 나고 말았다. 물론, 그 이야기는 해피 엔드로 끝나 주인을 구조하긴 하였다.

그 견습공의 빗자루처럼, 과학 기술도 근본적으로는 강력한 도구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을 더욱 쉽고 더욱 효율적이고 어쩌면 더욱더 즐거운 것이 되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적절히 제어하지 않거나 남용하게 될 때, 그것은 또한 비참한 심지어 치명적이기까지 한 결과를 야기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의 첫째가는 실례가 자동차이다. 자동차가 사회 전반에 많은 편의와 혜택을 가져다 주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대기 오염과 소음 공해, 및 돌발 사고나 운전 부주의로 인한 사망과 상해 등과 같은 해로운 부작용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과학 기술의 혁신이란 기껏해야 뒤범벅이 된 축복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미친 영향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과학 기술은 우리의 현대 세계에 깊이 스며 들어, 우리의 근로 및 생활 방식뿐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과, 우리 자신과 사회 전반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바꾸어 놓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과학 기술이 우리 자신에게 축복이 되도록 현명하게 사용하여 왔는가, 아니면 과학 기술이 해로운 방향으로 우리의 생활 방식을 지배해 왔는가?

오늘날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 및 과학 기술의 진보로부터 이러저러한 혜택을 받아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선진국이든 개발 도상국이든 할 것 없이, 과학 기술은 생활의 거의 모든 부면에 수많은 물질적 편의를 가져왔다. 우선 무엇보다도 기계, 화학 비료, 살충제 및 개량 종자 등의 사용은 많은 세계 인구에 식량 및 영양 공급을 증진시켜 왔다. 의학의 진보로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건강으로 더 오래 살게 되었다. 전자 공학, 컴퓨터 및 인공 위성의 발달과 더불어 자동차와 비행기는 사람들이 여행하고 세계 전역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통신하는 일을 비교적 쉬운 일이 되게 해주었다. 좀더 개인적 수준에서 보면, 과학 기술은 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많은 고된 일과 노동을 격감시켜 주었다.

과학 기술상 선진국인 나라들에 사는 일부 사람들이 ‘좋았던 옛 시절’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거나 일상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엄청난 수의 시간 및 노동 절약형 기구들을 서슴없이 포기해 버릴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실로, 과학 기술은 유용한 노예가 되어, 한 논평가가 평한 대로, 오늘날의 서민들이 “옛 시대의 제왕들도 결코 누릴 수 없었던” 삶을 누리게 해주었다.

하지만, 미래의 전망이 아주 밝은 것만은 아니다. ‘세계 관측 연구소’의 연구원인 콜린 노오먼은 이렇게 썼다. “비록 지난 수십년 동안 과학 기술이 사회에 대량 주입되어 엄청난 혜택을 가져왔긴 하지만, 일부 과학 기술상의 발전들은 숱한 절박한 사회 및 환경 문제들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악화시켰을지 모른다는 증거들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과학 기술이 환경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보라. 전 내무장관 스튜어트 우달은 그것을 “소리없는 위기”라고 부르면서, 미국 내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이 나라는 부와 권력에 있어 세계의 선두에 서 있지만, 또한 인간 거주지의 타락에서도 선두에 서 있다. 우리는 최상의 자동차와 최악의 폐차장들을 거느리고 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움직이기 쉬운 사람들이며, 최악의 교통 혼잡을 감내하고 있다. 우리는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산출하면서 가장 더러운 대기를 갖고 있다. 우리의 공장들은 더 많은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으며, 우리의 하천은 가장 대량의 오염 물질들이 흘러내리고 있다. 우리는 최상의 판매품들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러한 상품들의 가치를 선전하는 가장 꼴사나운 간판들을 걸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관리들과 대중은 우리가 그토록 자진해서 찬성했던 급속한 과학 기술의 발전 때문에 치르고 있는 엄청난 대가에 유의하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들은 하려고만 한다면 단지 오염원에 대해 조처만 취함으로써 더 이상의 환경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체 및 사업체들은 사람들에겐 일자리를, 지역 사회엔 번영을 그리고 정부엔 수입원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특히, 개발도상국가들에서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리하여, 과학 기술 덕분에 얻게 된 물질적 혜택들이 대가로 치르는 깨끗한 대기, 하수 및 토양보다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과학 기술에 대한 또 다른 변호는 그 기술이 조만간 여러 문제들을 처리할 해결책을 모색해 내리라는 것이다. 사태의 진상은 과학 기술의 실제적인 지식이 이미 입은 피해의 상당 부분을 중지시키거나 역전시키기까지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하려면 비용이 들며, 그것도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에 의해 유해한 것으로 판정받은 바 있는 단지 786 군데의 독성 폐기물 매립장을 정화하는 데만 해도 75억 내지 100억 달러(약 6조 7천 5백억 내지 9조원)의 기금을 예산 책정해야 하는데, 그 액수는 어느 누구도 감히 지불하려 들지 않는 엄청난 액수인 것이다.

직장과 고용에 미친 과학 기술의 영향은 당초부터 많은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신형 기계들이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몰아내리라는 두려움이 항상 있었던 것이다. ‘산업 혁명’ 초기에, 영국 노팅검의 방직 공장 근로자들은 상당한 위협을 느낀 나머지 네드 러드의 주도 아래 새로 도입된 수백대의 방직 기계들을 파괴함으로써, 널리 알려진 1811-12년의 러드 폭동을 일으켰었다.

‘산업 혁명’의 성공은 그러한 모든 행동들을 오늘날에는 우스운 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컴퓨터화된 자동 조작 및 로봇들을 사무실과 공장에 도입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또 다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 기술이 그 나름의 직업들—컴퓨터 조작자, 설계자, 프로그램 작성자 등과 같은 고도의 기술직들—이 생기게 하여 해고된 근로자들을 재훈련시킨 다음 재고용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러한 두려움을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높은 실직률 통계를 내보이면서 고도의 과학 기술이 그 점에 있어서 약속을 지켜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스탠포오드 대학교’의 최근 연구 결과는, “기술상의 혁신은 근로자들을 해고시킬 뿐 아니라, 산업 그 자체가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만 고용할 것”임을 밝혀 준다. 그 연구원들은 사람들이 컴퓨터 산업에 의해 생겨난 많은 신종 직업들에 관하여 듣고는 종종 깊은 인상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은 전체 직업 시장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이를테면, ‘노동 통계 사무국’은 1972년부터 1982년까지 미국에서 약 600,000종의 고도의 기술직들이 생겨났다고 추산한다. 그럼에도, 이것은 그 기간 동안 전체 직업 신장률의 약 5퍼센트만 차지할 뿐이었다. 다시 말하면, 평균적으로 직업 시장에 나온 20명 중 1명만이 고도 기술 산업체에 취업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신종 직업들이 생기게 하는 과학 기술의 능력이 실망적인 것이라면, 일부 사람들은 그것이 일의 성질을 기대만큼 향상시키지 못한 일은 더욱더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도의 기술직들이 어느 정도 세련된 일일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한 노동 전문가가 논평한 바에 의하면, 그러한 일부 직업들이 “기분 좋아지게 하고 많이 생각하게” 하지만, 대부분의 직업들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신 성장을 저해하고 정신을 둔화”시킨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도의 기술 산업체 직업들은 단조롭고 고된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이고 엄한 감독을 받으며 거의 기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치되기 전의 전통적인 직업들과는 달리, 그러한 많은 직업들은 또한 평균 임금이 낮다.

과학 기술이 이룩했다고 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아마 그 기술이 인간인 우리에게 무엇을 이룩해 주었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흔히 하는 한 가지 불평은 대량 생산 기술과 컴퓨터화된 자동 조작이 근로자의 개인적 특징과 판단력 및 경험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한 근로자 협회 회장인 카렌 누스바움이 밝힌 바 있는데,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능률을 위하여 “직업들이 감시를 받고 더욱더 전문화되어 가고 있으며, 이것은 더 커다란 작업의 점점 더 작은 부분만을 근로자들이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기계의 연장(延長)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일이다.”

그 결과, 소외감 즉 목적 의식과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대규모 시설에서 일하면서도 반복적으로 부분적인 일만 할 경우 자신들이 직업에서 실제적인 어떤 흥미를 키워가기란 어려운 노릇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의 최종 결과를 거의 보지 못하고 있으며, 이윤 분배에도 봉급 외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뉴우 저어지 과학 기술 연구소’의 교수인 머레이 터로프의 견해에 의하면, 이러한 상황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전혀 느끼지 않는 그리고 일반적으로 냉담한 고용인들의 세대”를 산출할 것이라는 것이다.

과학 기술 환경 속에서 근무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그 영향력에서 아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많은 지역에서, 과학 기술이 사람들의 일상 생활—설비 기구, 교통, 오락 등등—에 깊이 스며들어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과학 기술이 덜 발달된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사실상, 쟈크 엘뤼는 저서 「기술」(La Technique)에서 “현대인의 정신 상태는 완전히 기술적 가치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그의 목표는 기술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는 것과 같은 그러한 진보와 행복에 의해서만 오로지 묘사된다”는 소견을 피력하였다. 앞서 인용한 바 있는 클라아크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가 “과학 기술을 맞이하려고 달려갈 때, 우리는 매우 일시적인 체제, 즉 장래를 아주 무시해 버리는 향락주의적 사회를 맞아들였을 뿐”이라고 한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전체 파멸의 위협에 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많은 논란이 가공할 전쟁 무기—석궁에서부터 레이저 우주 병기에 이르기까지—를 생산해온 과학 기술상의 발전에 의하여 야기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러한 발전은 1942년 6월부터 1945년 7월까지 단지 3년 만에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최초의 원자 폭탄을 개발할 수 있었을 때 그 절정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미증유의 과학 기술상의 업적이 달성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엄청난 무기 경쟁을 시작하고 부채질하였으며, 그 경쟁은 어이없게도 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상호 확실 파괴)라고 하는 상황을 조성해 왔다. 더욱더 깊은 우려가 되는 것은 아마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핵 장치를 설치할 과학 기술을 익혀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저명한 과학자이자 환경 보호론자인 르네 듀보는 이러한 소견을 피력하였다. “지난 수십년 동안 뭔가가 잘못되어 왔다는 것은 명약 관화한 일이다. 자연 지배의 증가는 안전과 정신의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적 번영은 사람들을 더 건강하거나 더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하고 있다. 과학 기술상의 혁신들은 그 나름의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고, 그러한 문제들은 끊임없이 그것에 대응할 새로운 과학 기술의 개발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부언하였다. “과학자들이 과학 공업 기술에 그 기원을 둔 현대 세계의 비참한 국면들에 주의를 돌리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는 느낌이 널리 퍼져 있다.”

이렇게 마법사의 견습공에 관한 이야기와는 달리, 실제 생활에서 우리는 “주인”—과학자들 및 과학 기술자들—이 우리를 구조해 줄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이 경우, 그들도 과학 기술의 근시안적인 오용에 의해 야기된 산더미 같은 문제거리들 속에서 허위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과학 기술이 아니다.